오늘은 대학 시절 우연히 집어 들어 나의 인생책이 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관한 나의 생각을 기록해 본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게 된 계기
2023년 12월 즈음 우연히 대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묘한 책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난해하고 선정적이었으며,
주인공 토마시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으나,
문장 한 마디 마다의 묘한 끌림에 끝까지 완독 했고
그 이후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봤던 책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인생의 의미,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 관한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인생이란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서문에서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에 관련된 논점이 나오면서 시작된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니체의 사상에 집중하기보다
인생은 되돌아오지 않는다에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던 것 같은데
여러 번 재독 하면서 작가가 왜 이 사상을
서문에 배치했을까에 관한 의문으로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에 관해 간략하게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정말 누군가의 인생을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정의할 수 있을까?
인간은 늘 망각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에,
책을 읽고 기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꼭 기록을 해두는 편인데
당시에는, 인간의 삶에서의 균형을 중시하면서
결국 무거움과 가벼움의 양면성을 지닌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작성했다.
가벼워야 되는 상황에 무겁다면 괴로울 것이고
무거워야 하는 상황에서 가볍다면 그만큼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니체의 사상에 조금 더 집중해서 이 문장을 뜯어보려고 한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
영원회귀 사상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주장한 이론으로, 영겁 회귀라고도 부르며, 동일한 것을 영원히 반복한다는 개념이다.
자신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영원 회귀가 기본 개념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지만,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니체는 에너지 보전 법칙을 공부하면서 영원회귀 사상을 생각해 냈다. 대표적으로 영원회귀는 두 가지 결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첫 번째는 영원회귀 사상에서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영원회귀 속에서 나를 살아있게 하는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에 따르는 모든 것을 긍정하겠다는 긍정적 결론 사고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원회귀 사상을 극복한 극소수의 사람들이야 말로 창조적이고 주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가고 이 사람들이 결국 사회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처: 나무위키
아직까지 내겐 심오한 개념이지만,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책도 읽고 기록하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답했다.
가벼운 것이 긍정적이고 무거운 것이 부정적이라고.
그의 말이 맞을까? 이것이 문제다. 오직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어쩌면 작가도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에서 어떤 관점을 선택하고 살아야 하는지
정답을 정해두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무거움이란 진지함을 지칭하고
가벼움이란 낙천을 뜻하기 때문에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적절한 상황에 따른 태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네 명의 인물, 각 인물은 무거움과 가벼움을 의미하다.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체의 삶의 모습
토마시는 사랑하는 여자와 관계없이 성적으로 이뤄진 관계도 마다하지 않고
만나는 일종의 '바람둥이'이며 외과의사이다.
테레자에게 유일하게 동정의 감정을 느끼며 그녀의 곁에 남기로 하지만,
그럼에도 육체적 사랑의 욕구는 그칠 줄 모른다.
테레자라는 자신을 탓하며 수치심을 모르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오면서,
끊임없이 그녀에게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종업원으로 일하다 만난 토마시와 사랑에 빠지고, 이후 사비나를 통해 얻게 된
사진 기사에 해고된 뒤 칵테일 바에서 일하게 된다.
토마시의 권유로 자살 방조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비나는 토마시의 내연녀로, 어느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생은
배반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에 관한 집착이 심해지자 배우 남편과 결혼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벗어난다.
이후 프란츠를 만나 함께 떠나자는 말을 듣고 그를 배신해 다른 곳에 왔지만,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한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애인이며, 평소 사비나를 신격화하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
딸과 부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비나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사비나와 프란츠는 정반대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버린 것을 직접 목격했고 어머니에 대해 강한 동정심을 느끼기 때문에
여자에게 매우 순종적인 태도를 보인다.
가벼움을 의인화한다면 토마시와 사비나,
무거움을 의인화 한다면 테레자와 프란츠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사람은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위 문장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을 보면,
너무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추가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이뤄내야 하는 성취의 한 요소로
보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에 내가 느꼈던 후회가 모두 덧없음을 기억하고
매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한
책을 꺼내본 지 오래돼서 그런가,
작성해 둔 필사본만 보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독서 방법을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생각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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